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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by 짱8892 2025. 1. 20.

    [ 목차 ]

오사카시(일본어: 大阪市, 문화어: 오사까 시, 한자음: 대판시)는 일본 오사카부에 있는 도시로 부청 소재지다. 혼슈 긴키 지방의 요도강 하구 오사카만에 위치해 있으며, 일본에서 도쿄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

 

4세기에 나니와궁이 놓여진 이후 약 16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현재는 상업과 해외여행 등이 활발하고 있으며 주간 인구는 도쿄 23구 다음으로 일본 전국에서 2위, 야간 인구는 요코하마시 다음으로 3위이다. 1956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정령지정도시로 지정되었다. 간토 지방이 아닌 지방에서는 제일 많으며, 재일 한국인들이 많이 모여사는 곳이다. 역사 조몬 시대의 해침에 의해, 오사카만이 생성되고, 남부로부터 돌출된 우에마치 대지를 사취로 하는 반도가 만들어지고, 동부는 하내만이 되었다. 이를 통해 오늘날의 우에마치 지역은 동쪽의 내륙해와 반도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역사

] 조몬 시대 중기에는 이미 사람이 집단 거주하며, 어로·채집 등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으니, 이는 기원전 5~6세기의 모리노미야 유적에서 발견된 조개 더미와 굴, 유골로부터 알려지게 된 것이다. 야요이 시대가 되면 반도는 사주가 되어 하내 만은 담수화되고, 마침내 하내호가 되었다. 하내호 주변은 자연환경의 혜택을 입어, 벼농사 등 농경의 발전에 의해 평야에 영구적이며 대규모인 집단 거주가 출현하고, 해운이나 대륙과의 교역의 거점이 되었다. 오사카만의 끝자락에 있는 요도가와 ・ 야마토가와의 하구에 돌출된 우에마치 대지가 오사카라는 마을의 원점이다. 고훈 시대에 오사카는 일본 서부 지방을 연결하는 중심 항구로 개발되었다. 오사카평야에서 발견되는 무덤들의 수가 증가하고 크기가 커지는 것은 정치력이 집중되었다는 증거를 보여주며 국가가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5세기에는 난바 고즈궁(일본어판)이 세워졌다. 5, 6세기에 대륙 문물이 전래되고 귀화인들이 들어와 정착하였다. 645년에 고토쿠 천황은 오사카에 나니와노 나가라노 도요사키노 미야(일본어판)를 지었고 이 지역에 수도 나니와쿄를 만들었다. 이곳은 나니와라 불리는 현대적인 도시가 되었다. 이 이름은 나니와구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비록 수도가 655년에 아스카로 이전했지만 나니와는 야마토와 한국, 중국을 연결하는 수륙 교통의 중요한 연결고리로 남았다. 744년에 나니와는 쇼무의 부탁으로 다시 수도가 되었다. 나니와가 수도가 되는 것은 745년에 중단되었고 황궁은 헤이조쿄(현재의 나라시)로 돌아갔다. 항구의 기능은 나라 시대가 끝날 즈음에 이웃한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헤이안쿄와 다른 곳을 연결하는 활기찬 수륙 교통의 중심지로 남았다. 무로마치 시대인 1496년에 정토진종의 본거지로서 이시야마 혼간지가 옛 나니와 황궁 부지에 설립되었다. 1570년에 오다 노부나가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10년 후에 수도승들은 항복하였고 절은 파괴되었다. 1593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오사카성(城)을 이시야마 혼간지 부지에 축조하였다. 1614년부터 1615년에 걸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킨 후 오사카는 1619년에 에도 막부의 직할 영지로 되었다. 그리고 요도강의 치수를 위해 구 요다가와강(아지강)을 개통하여 베네치아처럼 시내 각지에 물이 흐르는 도시가 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오사카는 일본의 경제 중심지로서 인구의 상당수가 상인 계층에 속했다. 에도 시대를 거치면서 오사카는 일본의 주요 도시 중 하나로 성장하였고 활기차고 중요한 항구로서의 옛 역할을 회복하였다. 대중 문화는 에도의 삶을 묘사한 우키요에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사카의 도시 문화는 교토와 에도의 도시 문화와 평행하게 발전하였으며 마찬가지로 분라쿠와 가부키가 성행했다.1837년에 하급 무사 오시오 헤이하치로는 도시가 많은 빈곤층들을 지원하는 데 무관심한 것에 대응하여 농민 폭동을 이끌었다. 쇼군의 관리들이 진압하기 전에 도시의 대략 4분의 1이 파괴되었고 이후 오시오는 자결하였다. 막부에 의해 오사카는 효고(오늘날의 고베)와 함께 보신 전쟁과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인 1868년 1월 1일에 외국과의 교역을 개방하였다. 현대적인 지자체는 1889년에 정령 지정 도시로서 설립되었고 처음에 면적은 15 km2로 오늘날의 니시구, 주오구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후 도시는 세 번에 걸쳐 확장되어 현재의 크기인 222 km2에 이르게 되었다.